장애정체성, 능력이데올로기, 장애학의 존재이유 (feat. 행동과학)
능력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가 '능력(ability)'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능력을 정상성이라고 간주하는지를 보여주는 지배적 사고 체계이다.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전제와 교범을 형성하는 담론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며, 본질적으로 배타적 성격을 지닌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이데올로기 '안'과 '밖' 이라는 사회적 위치가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인지론적 주장이 가능해진다(Tobin, 2008/2019, p.23). 저자는 능력이데올로기를 곧 '건강함에 대한 선호'라고 설명한다. 이를 이 책 2장에서 다루는 '장애의 나르시시즘'과 연결해 보면,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장애정체성과 능력이데올로기의 관계와 위치성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장애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이 아닌 문화적·소주자 집단 정체성이다"(p. 16)라고 주장한다. 이는 장애를 단지 생물학적·자연 현상으로만 이해할 경우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곧 '지금의 몸을 가진 나'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즉, 장애정체성은 사회적 범주이며,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자 동시에 사회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융통성(flexible)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정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장애정체성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목소리의 크기가 영향력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장애정체성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온전히 조종당할 운명인가? 앞서 저자가 지적했듯이, 장애정체성은 사회적이며 사회에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상기해야 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장애학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장애학의 존재 이유는 장애인에 대하여, 장애인을 위하여, 장애인과 함께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p.18).
이 구절은 흡사 링컨의 그 유명한 연설, 즉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연상시킨다. 저자가 이 표현법을 차용한 것은 장애학이 단순한 학문적 흐름이 아니라 당사자와 '함께 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과업임을 선언하기 위함일 것이다.
능력이데올로기는 구체적으로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 지배적으로 작동한다. 그 속에서 많은 장애 학생들은 에이블리즘(ableism)이 생산하는 차별과 배제의 구조를 경험하며 성장한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학교에서의 '적응(adaptation) 훈련'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장애인은 차별 구조에 익숙해지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오랫동안 연습되고 강화된 행동은 이후에도 빈도와 강도에서 일정 수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즉, 학교에서 학습된 순응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유지·일반화된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가 이제 성인이 된 장애인들에게 목소리를 내라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장애인권운동과 장애학은 권력 구조를 흔들고 능력주의를 비판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새로운 행동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구조화된 교수와 강화계획, 반복적 연습이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강화가 주어질 때에야 새로운 행동은 더 빠르게 습득·유지된다. 그러나 학교 시절, 장애 학생들에게 그러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맥락은 실제 사례와도 연결된다. 저상버스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이용률이 낮은 이유는 단순한 접근성의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Giddens(2006)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손상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스스로 '장애인(disabled)'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위해서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촉발하는 계기(trigger)가 필요하다. 다큐멘터리 Crip Camp에서 젊은 장애인들이 함께 대화하고 교류하며 권리에 대한 의식을 키운 경험은, 곧 장애정체성 형서과 임파워먼트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일련의 과정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잘게 나누어진 작은 행동이 연결되는 쌓이는 '형성(shaping)'의 과정이다.
장애의 유무를 떠나, 정체성은 결국 '나(I)'와 '사회'의 관계 속에서 축적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 교육은 이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한국의 현실은 '순응훈련'과 '장애로 구별짓기'에 여념이 없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 머리를 조아리는 진귀한 상황을 자주 본다. 특수학교 입학이 '로또 당첨'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능력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무장된 교육·특수교육 현장의 민낯이다.
장애의 사회모델이 받는 다수의 비판들을 정체성 모델(Identity Model)을 들어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정체성은 어느 날 갑자기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축적되어 형성되기 때문에 학교와 교육 현장에 그 책임을 묻는다. 제대로 된 교육의 경험 없이 당사자들에게 곧바로 자기 목소리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앞으로 장애권리운동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좌절을 안길 위험이 있다. 지금은 교육, 특히 특수교육이 먼저 장애학에 손을 내밀어야 할 시점이다.
출처
Giddens, A. (2006). Sociology (5th ed.). Cambridge: Polity Press.
Siebers, T. (2008). 장애 이론: 장애 정체성의 이론화 (조한진, 손홍일, 이지수, 정지웅, 강민희, & 최복천, Trans.). 그린비. (Original work published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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